농업축산신문
독자의견
 도강하는 자는 예고 없이 사격하며, 국경지역에서 사상이 변한 자들은 백만이고 이백만이고
 닉네임 : 이민위천  2023-01-21 12:28:34   조회: 149   
1997.1.


체포땐 족쇄채워 시내돈뒤 처형

- 북한의 탈북자 처리


[중앙일보] 1997.01.21



북한은 강온(强穩)양면의 탈북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탈북에 실패한 주민에게는 가혹한 벌을 주고 있다.주민들이 집단적으로 학대할 정도로 살벌하다.


그러나 가족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탈북에 연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뒤 농촌으로 추방하고 있다고 한다.

연좌제를 강화해 예전처럼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면 반체제 인사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 다.


김경호씨 셋째딸 명숙씨는“붙잡힌 탈북자는 개대접을 받는다”며 “탈북에 실패해 잡혀온 것을 2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첫번째는 청진에 사는 일가족이 두만강을 넘어가다 붙잡혀오는 기차에서다.북한 안전원들은 심지어 어린이한테도 포승줄로 묶어 화장실로 데려가 구타했다고 한다.


두번째는 지난해 3월 회령시원산리 농장에서 일하던 일가 4명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잡혀온 사례다.북한 당국은 이들 일가 4명의 손에 족쇄를 채워 회령 시내 곳곳을 끌고 다니며 주민들에게는“반역자들에게 돌을 뿌리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

시내를 며칠간 끌고 다니며 근무했던 기업소와 역전등을 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사상교육시간에 “이들이 원산리로 끌려가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됐다”고 밝혔다고 명숙씨는 전했다.








1997.10.


「渡江者들의 현지 총살에 대한 국방위원회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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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국방위원회 명령이라는 것에서 밝힌 대로, 金正日은 중국을 비롯한 국경지역에서 渡江(도강)하는 자는 예고 없이 사격하며, 국경지역에서 사상이 변한 자들은 백만이고 이백만이고 용서 없이 쓸어버리겠다고 호언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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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에게서 말을 들으니, 현재 북한에서는 脫北현상을 대단히 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1999년 7월 말에 있었던 일이다. 함경북도 온성군과 새별군, 종성군에서 중국 쪽으로 넘다가 붙잡힌 脫北者들과, 중국 연변에서 송환받은 脫北者들을 나진-원산행 열차에 싣고 청진으로 가고 있었다.

가던 도중 회령을 지나 고무산역에서,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脫北者들에게 총질했는데 그 자리에서 40명 정도나 쏘아 죽였다고 한다.


이제는 脫北者들을 엄벌에 처하라는 金正日(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 잡으면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에 넣으며, 가족들도 같이 보위부 관리소에 넣어 처형한다. 그러나 나는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붙잡히면 기껏해야 벌금이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딱 전쟁마당을 방불케 하는 북한의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먹을 것도 없고 차디찬 초겨울 날씨에 땔것이 없어 가는 집마다 얼음장같이 차디찬 집안에서 떨고 있는 이곳 주민들의 불쌍한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무서운 독재로 마음속마다 공포에 떨고 있고, 영양 실조로 얼굴은 누렇게 떠 있으니 그들이 살아 있는들 무슨 인간다운 맛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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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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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실례로 김정일은 함경북도 회령의 탈북자 김현주 가족(중국 공안에 의하여 그들은 가족 전원이 다시 북으로 끌려갔다) 6명 외에 관련자 4명 등 도합 10명에 대해 공개 총살을 명령했고, 이에 따라 10명에 대한 처형이 혜산 운동장에서 1999년 4월 거행되었다. 1999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에 새로 설치된 철조망(차단물)에 걸려든 탈북자들은 2년 전인, 1997년 10월에 하달된 「渡江者들의 현지 총살에 대한 국방위원회 명령」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처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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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사설] 탈북자 현장 사살, 체제 한계 드러낸 북한


2011-11-07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도착한 탈북자를 북한군이 국경 너머로 총을 쏘아 사살한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북-중 국경 경비대에 탈북 주민을 즉각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이다. 탈북했다가 다시 잡혀온 주민을 ‘시범 처형’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3대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북아프리카 독재자들의 말로(末路)처럼 김정일 체제가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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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11106/41678680/1










[ ..... 일제 시대 ....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만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 보이는 족족 잡아들여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고문을 자행한 적이 없다. ....... ]



한국의 日帝청산과 북한의 日帝계승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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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청산하려면 전통을 살려야 한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이순신, 정약용도 봉건주의자라며 욕한다. 오로지 김일성 가문만 있을 따름이다. 북한에는 전통이 거의 사라졌다. 최대 명절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로 바뀌었다. 절도 없고 교회도 없다. 명절도 없고 제사도 없다.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도 다 없어졌다. 명절이나 제삿날 또는 부모님 생일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다 모여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미풍양속도 다 없어졌다. 뇌물 공화국에 권력 왕국으로 전락했다. 뇌물 안 주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고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한다.



일제 청산하려면 인권유린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일제라면 치를 떠는 가장 큰 이유가 인권유린이 수시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법은 멀고 몽둥이는 가까웠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아예 인권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 모른다. 마침내 전세계가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조용한 외교란 것을 60년이나 지속했지만, 갈수록 악화되기만 하여 마침내 전세계가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일제 시대, 일제 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전 국민을 감시 감독하면서 20만 명을 상시로 수용소에 가둬 둔 적이 없다. 1만 명을 그렇게 한 적도 없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만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되놈과 한통속이 되어 보이는 족족 잡아들여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고문을 자행한 적이 없다. 일제 시대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조선인을 일제도 그렇게 붙잡아 고문을 자행한 적이 없다.


김일성 부자는 일제를 충실히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의 독재에 연산군의 폭정을 접목하여 이를 심화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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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5811&C_CC=AZ










[ .....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채택 -




서 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 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 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시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 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주체적인 혁명로선을 내놓으시고 여러 단계의 사회혁명과 건설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공화국을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나라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 국가로 강화 발전시키시였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국가건설과 국가활동의 근본원칙을 밝히시고 가장 우월한 국가사회제도와 정치방식, 사회관리체계와 관리방법을 확립하시였으며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시였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 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 통일의 구성이시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통일의 강유력한 보루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 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정책의 기본리념을 밝히시고 그에 기초하여 나라의 대외관계를 확대 발전시키시였으며 공화국의 국제적 권위를 높이 떨치게 하시였다. 김일성 동지는 세계정치의 원로로서 자주의 새 시대를 개척하시고 사회주의 운동과 쁠럭불가담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세계평화와 인민들 사이의 친선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으며 인류의 자주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


김일성 동지는 사상리론과 령도예술의 천재이시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였으며 위대한 혁명가, 정치가이시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사상과 령도업적은 조선혁명의 만년재보이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륭성 번영을 위한 기본담보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 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 나갈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









[ ..... 김일성은 ... “이민위천은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 ......
.... “김정일 위원장도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 ]



2013.8.


이석기 집 액자 ‘이민위천’은 김일성 좌우명

“이석기 의원이 ‘지하조직’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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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정원은 이 의원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 벽에 걸린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액자 속 글귀가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좌우명인 것으로 보고 북한과의 연계여부를 수사 중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일성은 지난 1992년 4월 발행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민위천은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라고 밝혔다. 김 주석 사망 직후인 그해 7월 22일 평양방송도 “김정일 위원장도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2012년 4월 13일 개정된 북한 헌법 서문에서도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라고 명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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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82901030127255002






[...."김정일 동지는 ... "이민위천(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김)의 우리 당 국가건설의 근본이념을 국가활동 출발점으로 삼고 ...... ]



<종합> 김정일, 제333선거구 대의원 당선

[뉴시스] 2009년 03월 09일



서울=뉴시스】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8일 실시된 북한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군부대 선거구이자 이번 선거에서 가장 먼저 김 위원장을 후보로 추대한 제333 선거구에서 대의원으로 당선됐다.


북한 중앙방송은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선거를 위한 중앙선거위원회는 지난 8일 실시한 제333선거구 선거 결과를 발표했다"며 "김정일 동지가 100% 찬성 투표로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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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김정일 동지는 김일성 동지(전 국가주석)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고 국방위원회를 중추로 하는 우리 식의 국가영도체계를 확립해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한 튼튼한 담보를 마련했다"며 "이민위천(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김)의 우리 당 국가건설의 근본이념을 국가활동 출발점으로 삼고 참다운 인민의 정권을 건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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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제333호 선거구 전체 선거자들은 선군조선의 상징이며 미래인 김정일 동지를 결사옹위하며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굳건히 수호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기어이 실현하고야 말 구든 결의를 다졌다"고 덧붙였다.


방송은 "김정일 동지를 높이 모셔 자랑찬 백승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우리 공화국은 앞으로도 불패의 위력을 지닌 주체의 사회주의 국가로 강성번영할 것이며 김일성 동지의 위업, 주체혁명 위엄의 종국적 승리는 반드시 이룩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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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0&articleid=2009030913272679580&newssetid=455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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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상어날개탕(야자열매 속을 파고 상어지느러미 수프로 채운 것), 뱀장어 캐비어, 코야(새끼돼지 통구이), 물고기 용정차(중국산 고급녹차)풍 철판구이, 비둘기 간장찜, 염소고기 샤슬리크(러시아식 바비큐), 라클레트(프랑스산 치즈를 가지와 감자 위에 얹은 것), 자라 찜….



일반인들이라면 들어본 적도 없을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한 이 식단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녁식사 차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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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을 하다 보니 재료는 전세계에서 수입했다. 후지모토씨는 “중국 신장(新疆)성으로부터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두리안·파파야· 망고 등 열대과일, 체코에서 생맥주, 덴마크에서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캐비어(철갑상어알), 일본에서 어류를 수입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화제가 됐던 주석궁의 고급 술에 대해서도 그는 “주석궁에는 1만병의 술을 모아놓은 술 창고가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에도 위스키, 코냑을 비롯, 일본 청주까지 망라된 술 창고가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마시는 술은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XO’였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토씨는 이 화려한 식단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림표에는 그날의 주 메뉴만 실릴 뿐이고, 실제 식탁에는 ‘반찬’으로 고기와 생선도 나오고 반찬의 양도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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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회에서 남는 음식을 땅에 묻는 일만 전담으로 하는 부대도 있다. ....... ]



“용천 열차테러, 김정일 무당이 막았다”


By 양정아 기자

-200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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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경호원들의 생활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독신 경호원들은 독방을 쓰는데, 그 침대 밑을 뒤지면 유명 양주가 물병마냥 여기저기 널려있다. 김정일 연회에서 먹다 남은 양주를 경호원들이 나눠 먹는 것이다.


또 연회에서 남는 음식을 땅에 묻는 일만 전담으로 하는 부대도 있다. 장군님이 이렇게 호화스러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면 안 되기 때문에 음식들은 일절 바깥에 내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묻는다.

경호원들은 고난의 행군(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 시절에도 바깥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하루 세끼 배불리 먹었으며, 먹는 걸로 고생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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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김만철 일가



[ ..... "남조선에서는 간장 된장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지금까지 헛살아 왔다" ........ ]



[ ..... "무시무시한 생지옥 남조선으로 간다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겠다" ....... ]


[ ..... "공화국 북반부와 남반부를 대비하여 볼 때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다" ...... ]



1987.2.11. 경향신문


김만철씨 일가 남쪽여로 25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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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생지옥 남조선으로 간다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겠다"던 처남이 한국의 참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는 광경이나 김씨가 "공화국 북반부와 남반부를 대비하여 볼 때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상봉한 누님에게 실토한 것은 북괴가 얼마나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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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13살난 막내 아들은 또 "남조선에 거지들이 득시글거리고 미제가 착취하며 , 그래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줄줄이 외어 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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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조선에서는 간장 된장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지금까지 헛살아 왔다"는 말은 북한주민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


또 "이렇게 좋은 옷은 처음 입어봤다" "좋은 옷 입어 보고 비행기도 타 보았으니 이젠 더 이상 소원이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너무 좋다" "마치 큰 잔치를 벌이고 있는 기분"이라는 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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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올 때 가져온 삼면경이 깨진 뒤 손거울조차 없이 지냈다 ....... ]



「혈육의 정」은 뜨거웠다.


[중앙일보] 198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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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철씨의 처 최봉례씨는 작년에 홍수 난 이후 북한에서는 배급이 잘 안돼 사료를 사다 나누어 먹은 적이 있다고 생활의 어려움을 폭로.


전기 제품이라곤 전기 다리미밖에 없고 TV·냉장고·라디오도 없이 지냈으며 라디오 방송은 중앙에서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고.


거울을 볼 시간 없이 주민들은 매일 쫓기고 그나마 거울이 귀해 최씨는 시집올 때 가져온 삼면경이 깨진 뒤 손거울조차 없이 지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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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  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86011&c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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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대신 물에다 밥을 말아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 ]



"한국에 오길 잘했다"‥‥환한미소


[중앙일보] 1987.02.10


김만철씨 일가는 놀라움과 신기함, 자유를 찾은 기쁨속에서 서울생활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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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밥말아 먹기도>


◇아침식사=9일 상오9시 김치와 생선·육류등으로 자유세계에서의 첫 아침식사를 밝은 분위기 속에서 담소하며 즐겼다. 대부분 그릇을 깨끗이 비웠으나 김씨의 부인 최봉례씨는 『기름진 음식을 먹었더니 느끼하다』 며 반정도를 남겼다.


특히 나이어린 광호군과 광숙양은 국대신 물에다 밥을 말아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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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8년에 보위부 경비대원으로 입대했다.

나는 북한이 제일 행복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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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키스탄에서 개가 쌀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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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정일은 매년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공약을 하곤 했는데, 그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는 잘사는 나라도 아닌데 개가 쌀밥을 먹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개만도 못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이 외교관은 북한에 돌아가서 파키스탄에서 개가 쌀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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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이민위천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실력가가 되어 모두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당찬 일꾼이 ....... ]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2008년 정기대의원대회 특별결의문>




민주노동당을 지지 강화하고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총진군하자




2012년은 우리 민족의 새 시대가 펼쳐지는 해이다. 통일강성대국 건설로 민족의 대전성기가 펼쳐질 2012년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하고 마지막 전선인 경제강국 건설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선군정치를 앞세운 북한의 정치군사적 공세 앞에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6.15, 10.4 선언은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낮은 단계 통일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권의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심 이반을 불러와 집권 하반기로 가면 대안 정치세력으로 민중의 관심이 쏠릴 것이다. 한편 한국 정치지형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진보 대 보수, 자주통일 대 친미반북의 구도로 급격히 재편되면서 진보진영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객관적 조건은 무르익고 있다.



문제는 주체 역량이다.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주체 역량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켜야 하며 특히 민주노동당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일부 반북세력들이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당을 파괴하려 하고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민주노동당은 민중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진보정당이다. 민주노동당 강화에 민중 승리의 길이 있다.



올해 2008년은 주체 역량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태세를 갖추는 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매진할 것이다.


하나, 우리는 일부 반북분열세력에 맞서 민주노동당을 강화하며, 민중 속에 뿌리박은 진보정당이 되도록 민주노동당을 발전시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하나, 우리는 이민위천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실력가가 되어 모두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당찬 일꾼이 될 것이다.


하나, 우리는 당면하여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진보진영의 유일한 대표정당으로 확립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2008년 2월 17일

2008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대의원 일동









2018.5.


압록강변에 北국경경비대에 의해 사살된 탈북민 시신들


양연희 기자

2018.05.14



지난 겨울 압록강을 넘어 탈북을 시도하다 국경경비대에 의해 사살된 북한주민들의 시신이 해빙기를 맞아 드러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소식통들을 인용해 12일 전했다.


RFA는 이날 중국 길림성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중국의 변경지역인 장백현의 압록강변에서 북조선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자주 드러나 인근주민들이 조선당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북중 국경에서 특히 장백현은 압록강의 상류로 물골이 얕고 수량이 적어 도강이 용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며 “때문에 이곳에서는 탈북하다 숨진 북조선 주민들의 시신이 자주 발견되어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또 “요즘 북한과 마주한 장백의 날씨는 평균 2도에서 10도 정도로 얼어붙었던 압록강이 이제야 완전히 풀렸다”며 “겨우내 얼어붙었던 조선주민들의 시신이 녹은 강물에 떠밀려 온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현장에서 시신을 목격한 주민(중국인)들은 북한 쪽을 노려보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며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 나선 주민들을 사살하고 시신마저 거두지 않고 방치해 두는 조선당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중국 길림성 도문(투먼) 시의 한 소식통은 RFA에 “얼마 전 친척 방문차 중국에 온 조선 주민을 통해 북한당국이 탈북자를 혹독하게 처벌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조선당국이 ‘국경에 발을 대는 자는 무조건 한국행을 기도하는 것으로 알고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조선주민에 따르면 지난 4월 자신이 살던 청진시 신암구역에서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된 한 가족이 지역주민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공개재판에 회부돼 부부와 미성년 아들 등 일가족이 15년의 노동교화형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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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국경수비대에 ‘탈북국민 사살’ 명령… 정치범수용소선 고문 자행”


문화일보 2019-03-14
정철순


美 ‘2018 북한 인권보고서’

수용소 전기고문·물고문 ‘일상’
여성들에 대한 성적학대도 심각
교도관, 탈출 시도자 사살 가능

치안기구에 無재판 체포 권한


미국 정부가 연례 발행하는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해 “정권에 의해 자의적 살인과 고문이 자행되고 생명에 위협적인 정치범 수용소가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가 13일 발표한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국경수비대원들은 허가 없이 탈북하는 국민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교도관들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사살할 수 있다”며 “북한 정권은 인권 유린을 저지른 관리들을 기소하기 위해 신뢰할 만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국무부는 29페이지에 걸쳐 북한의 인권 유린 상황을 전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정권이 군대와 준군사조직을 활용해 국민을 통제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들 조직의 임무를 중첩시켜 견제와 충성을 유도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치안 기구는 재판 없이 국민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일반인들은 형사재판 절차와 관행에 대한 정보를 거의 이용할 수 없어 본인의 기소 내용도 알지 못하고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의 폭력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국무부는 “정치범 수용소에는 최대 12만 명이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 또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는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140명의 공무원을 처형했으며 2012년부터 2016년까지 340건의 공개처형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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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31401070530129001










2021.1. 김정은 --- '이민위천'



당 대회 후 매일 사진 찍는 北 김정은 '이민위천' 강조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2021-01-19


18일 하루에만 세 차례 기념사진 촬영
인민대중제일주의 강조하며 체제단결 강화


북한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2일 8차 당 대회가 폐막한 이후 거의 매일 당 대회 참가자 등과 기념사진을 찍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8일 하루에만 세 차례 기념 촬영을 진행했다. 당 대회에서 구호로 채택한 '이민위천과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해 체제 단결을 꾀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19일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8일 새로 선출된 당 중앙 지도기관 구성원들과 내각 구성원들을 연이어 만나 축하하고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당 대회를 준비한 출판인쇄부문 사람들도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로 불러 사진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조선로동당의 핵심중의 핵심인 당중앙지도기관 성원들에게 이민위천, 위민헌신의 숭고한 이념을 뼈 속 깊이 새기고 인민대중제일주의에 무한히 충실하며 새로운 책임과 본분을 훌륭히 수행하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중앙당 간부들에 이어 새로 임명된 내각 간부들만 모아 별도로 사진을 찍었다. 5개년 경제계획을 책임진 내각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여기서도 애국충정과 이민위천사상을 심장에 새길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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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조선로동당 총비서 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혁명의 새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자'는 사설에서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모신 것은 우리 식 사회주의승리의 결정적 담보를 마련하고 창창한 전도를 기약하는 거대한 정치적 사변이라면서, 전당, 전국, 전민이 당 제8차 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 총궐기, 총 매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48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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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이 듣지 아니하고 .... 가는 대로 말리지 말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나서 떠도는 백성이 비록 많았으나, 굶주려 죽은 사람은 적었다 ...... ]



세종실록 18권, 세종 4년 윤12월 28일 辛巳 4번째 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흉년으로 유이민 발생이 많아지다



이 해에 평안·함길·강원·황해 등 각도에 굶주림이 심하여 백성들이 살 수 없으므로, 전라도와 경상도에 풍년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늙은이와 어린애를 이끌고 식량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 길에 줄을 이어 끊이지 않고, 서북(西北) 지방의 인민(人民)이 거의 모두 남방으로 옮기어 가게 되매,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이 그들의 옮겨가는 것을 금지하기를 청하나, 임금이 듣지 아니하고 여러 도(道)로 하여금 모두 진제소(賑濟所)를 설치하여 그들을 진휼(賑恤)하며, 그들이 가는 대로 말리지 말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나서 떠도는 백성이 비록 많았으나, 굶주려 죽은 사람은 적었다


【태백산사고본】 6책 18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18면







세종실록 20권, 세종 5년 6월 10일 己未 2번째 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백성을 굶어 죽게 한 현감 김자경을 처벌하다



예조 판서 황희(黃喜)가 계하기를,


"고양현(高陽縣)에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하여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 이극복(李克復)을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더니, 사비(私婢) 모란[牧丹]의 모자(母子) 세 사람이 굶주리어 부종(浮腫)이 났고, 소동(小童) 1명은 굶어 죽었다 합니다."


하니,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현감(縣監) 김자경(金資敬)을 추핵(推覈)하니, 곤장 80대에 좌죄(坐罪)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44면







성종실록 8권, 성종 1년 12월 22일 乙丑 7번째 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교외에다 진제창을 설치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할 것을 호조에서 아뢰다



호조(戶曹)에서 아뢰기를,


"지금 여러 도(道)가 실농(失農)되었으니, 외방(外方)의 굶주린 백성들이 서울로 와서 구걸질하는 자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청컨대 전례(前例)에 의하여 교외(郊外)에다가 진제장(賑濟場)을 설치하고 한성부(漢城府) 및 각부(各部)로 하여금 감장(監掌)하여 진구(賑救)하도록 하고, 만일 서로서로 미루거나 물리쳐서 굶어죽는 자가 있게 되면 각각 그 호수(戶首)는 율(律)에 의하여 중론(重論)하고, 관리(官吏)는 파출(罷黜)시키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43면







중종실록 13권, 중종 6년 5월 8일 丁巳 7번째 기사
1511년 명 정덕(正德) 6년

동서 진제장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구휼하게 하다



유사(有司)에 신칙하여, 동·서 진제장(賑濟場)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구휼하게 하고, 굶어 죽는 자가 있으면 계달(啓達)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514면









1471 성종 2년 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 ..... 임금은 백성들을 으뜸으로 삼고 백성들은 먹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

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知天之天者, 王道可成 ....... ]



성종실록 9권, 성종 2년 1월 27일 庚子 3번째 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사간원 행 대사간 김수녕 등이 상소하여 불경 만드는 일의 불가함을 아뢰다



사간원 행 대사간(司諫院行大司諫) 김수녕(金壽寧)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신 등이 그윽이 듣건대 임금은 백성들을 으뜸으로 삼고 백성들은 먹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하늘의 천리(天理)를 아는 자는 왕도(王道)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밝은 제왕(帝王)은 곡식(穀食)을 중하게 여기고 용도(用途)를 아끼며, 일찍이 낭비하여서 재물(財物)을 손상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생산하는 자는 많고 먹는 자는 적으며 만드는 자가 빠르고 쓰는 자가 느린 것이, 나라를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을 넉넉하게 하여서 나라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도리가 아님이 없습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이래로 정치는 백성들을 무양(撫養)하는 데에 두시고 묵은 폐단을 다스려 없애시어 이익(利益)을 크게 일으키시며 지나치고 쓸데없는 비용을 헤아려서 줄이지 아니함이 없으신 것은, 백성들에게 좋은 정치를 베푸시려는 뜻이 지극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쓸데없고 긴급하지 않은 일들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승니(僧尼)를 공양(供養)하는 일이나 불서(佛書)를 조각하여 만드는 일과 같은 것은 모두 아직 중지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풍년이 든 해에 있어서도 또한 반드시 이와 같이 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흉년이 든 해이겠습니까?


지나간 해에는 크게 흉년이 들어서 남도(南道)의 백성들이 굶주려서 죽거나 유리(流離)하는 등 이곳저곳에서 모두 그러하므로, 바야흐로 진휼(賑恤) 구제(救濟)하는 일이 긴급한데도 허탄(虛誕)한 가르침을 장황(張皇)하게 늘어 놓고 그치지 않으며, 해마다 들어오는 미곡(米穀)이 전에 비하여 반드시 줄어드는데도 승도(僧徒)·인부(人夫)·공장(工匠)이 쓸데없이 먹는 것이 옛날과 같으니, 나라의 용도(用途)가 혹시 줄어들거나 백성들의 식량이 혹시 소모(消耗)되는 것이 반드시 이런 것에서 말미암지 아니한다고 할 수 없으니 그윽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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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축한 것이 얼마되지 않고 중외(中外)의 경비(經費)가 얼마 남지 않은 때를 당하여 굶주리어 죽거나 유리(流離)하는 백성들이 몇 백 명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아직도 헤아려서 줄이지 아니하고, 하늘의 천리(天理)를 가벼이 여겨 황당(荒唐)하고 무익(無益)한 일에 비용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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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천지(天地)가 재물을 만들어 내는 데는 다만 이와 같이 숫자가 제한되어 있는데, 한 곳에서 후하게 하면 반드시 다른 곳에서 모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오얏이나 매실(梅實) 가운데 많이 달린 것은 내년(來年)에는 쇠약(衰弱)해질 것이니, 천지(天地)에서도 능히 양쪽으로 여유가 있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치문(緇門)124) 을 숭상하여 받들려고 한다면 백성들에게도 미처 그리 할 겨를이 없을 터인데, 백성들이 병들면 나라의 근본이 위태로와질 것이니, 국가에서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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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사고본】 2책 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53면



○ 司諫院行大司諫金壽寧等上疏曰:


臣等竊聞, 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知天之天者, 王道可成。 故古之明王, 重穀而節用, 未嘗枉費, 以傷財。 生衆食寡, 爲疾用舒, 無非所以足國、裕民, 而固邦本之道也。 恭惟殿下, 卽位以來, 政在養民, 釐去宿弊, 大益(輿)〔興〕 利, 浮冗之費, 靡不裁省, 所以嘉惠元元者, 至矣。 然無用不急之作, 尙有未除, 如供養僧尼, 雕造佛書, 是皆未可以止耶? 在豐穰之歲, 亦不必爲此, 況凶年乎? 去歲大侵, 南道之民, 餓莩離流, 所在皆然, 方以賑救爲急, 而虛誕之敎, 張皇未已, 歲入米穀, 視前必減, 而僧徒、夫匠, 浮食如故, 竊恐, 國用之或虧, 民食之或耗, 未必不由乎此也。 臣等謹計, 中外寺社, 仰給公家者凡八所, 供佛、供僧幷歲獻之需, 大率一歲之費, 幾至八百餘石。 常供之外, 又有別供, 又有歲給鹽二百五十餘石。 至於刊經都監支用之數, 歲不下千數百碩, 其費雖曰出於本監, 皆取自吾民, 豈從天降, 而地出耶? 況豐儲倉月輸米三十五碩, 而月輸之外, 又有另給月俸, 非國廩, 而何臣等又啓? 寺社受田者, 四十三所, 田八千三百餘結, 其取諸民者, 亦不爲少矣。 當今之蓄積, 有幾中外之經費, 有幾餓莩流離之民, 不知幾百。 而尙不爲裁減, 輕天之天, 用之於荒幻無益之事耶? 或曰: "以一國之大倉廩之儲, 少爾費用, 又何消乏之有?" 是不然也。 夫財用, 積銖成兩, 銖、兩不已, 以至於萬鈞; 累升爲斗, 升、斗不已, 以至於萬碩。 蓄之千日而不足, 糜之一日而有餘, 豈可謂此爲少, 而枉費吾民之脂膏耶? 且天地生財, 只有此數, 厚於此者, 必耗於彼。 李、梅多實者, 來年爲衰, 自天地不能以兩贏, 而況於人事乎? 故今欲崇奉緇門, 則未遑於蒼生; 蒼生之病, 而邦本危矣。 國家, 何所賴焉? 古人云: "風塵再擾, 霜雹荐臻。" 沙彌不可操干戈, 寺塔不足攘饑饉。 臣等以此, 益知緇門之果不必供也。 伏願聖明, 夬斷僧尼供奉之費, 一切汰減, 亟罷刊經都監, 移其費, 以活南民垂盡之命, 斯乃至德大政, 君民之天, 皆得矣。 孔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又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夫異端之不可攻, 財用之不可不節, 民人之不可不惠愛, 睿鑑所已講明者。 臣等敢以此誦之, 非臣等之言, 乃一國人之言也。 伏惟殿下財幸。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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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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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역생 육가열전에는 한(漢)나라의 역이기라는 모사(謀士)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秦)나라가 멸망한 후, 한왕(漢王) 유방(劉邦)과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는 천하를 다투고 있었다. 항우는 우세한 병력으로 유방을 공격했다. 이에 유방은 성고의 동쪽 지역을 항우에게 내주고자 했다. 이때 유방의 모사였던 역이기는 식량 창고인 오창(敖倉)이 있는 그 지역을 지킬 것을 주장하며 다음과 말했다.

“‘저는 천(天)이 천(天)이라는 것을 잘 아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있으나, 천을 천으로 알지 못하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없다. 왕자(王者)는 백성을 천(天)으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천(天)으로 안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유방은 역이기의 말에 따라, 곧 전략을 바꿨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말은 한서(漢書) 역이기전에도 실려 있는데 이는‘백성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임을 뜻한다. 임금 된 자는 백성을 하늘 섬기듯 섬겨야 하고 백성들의 하늘은 임금이 아니라 곧 식량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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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n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4423

[기자수첩] 정신 못차리는 산청군의회,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의 의미를 새겨야
승인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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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에 보면 기자(箕子)는 주나라 무왕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사항의 으뜸은 먹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이다”라고 설파했다.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은 ‘왕이민위천 민이식위천(王以民爲天, 民以食爲天)’이라고 했다. 왕은 백성으로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말이다.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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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선(減膳)

sillokwiki


왕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음식의 양이나 가짓수를 줄이도록 조치하여 실제로 행한 일.



개설


조선왕조에서 감선(減膳)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의 양이나 가짓수를 줄이는 일, 둘째는 하루에 5번 받는 음식의 횟수를 줄이는 일, 셋째는 수라상에 올리는 육고기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일이다.


왕이 감선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연재해이다. 가뭄이나 홍수, 날씨의 갑작스런 변화, 혜성이 나타나거나 벼락이 떨어지는 등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왕은 감선을 하였다. 감선은 자연재해나 자연의 이상한 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왕이 스스로 덕(德)이 없어서 일어난 것이라고 여겨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자연재해 외에도 왕의 친척이나 아끼는 신하와 그의 친척이 아프거나 죽거나 기일을 맞이하여도 애도의 뜻으로 감선을 행했다. 심지어 왕의 요구가 신하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감선을 행했다. 감선과 철선(撤膳)이 혼용되어 쓰이기도 했다.



내용 및 특징


감선은 고대의 유학자들이 가졌던 하늘과 땅,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에서 나왔다. 중국 한나라 때의 동중서(董仲舒)는 황제의 덕이 부족하면 자연도 노하여 재해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했다. 『진서(晉書)』「성제기(成帝紀)」에는 3월에 가뭄이 들자, 음식 장만하는 일을 맡은 태관(太官)에게 감선을 지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중국의 황제가 시행한 감선의 내용은 육고기 대신에 채소 음식을 먹거나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방식이었다. 즉 소선(素膳)을 감선의 일종으로 보았다. 조선왕조에서는 감선 내용이 왕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데 감선의 이유와 과정에 대해 분명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선의 이유가 발생하면 왕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감선을 시행하는 교지를 내렸다. 감선의 주체는 왕이지만, 왕의 식사와 건강을 책임진 부서에 교지를 내려 감선을 실시토록 알렸다.

왕이 감선을 하면 왕비를 비롯하여 왕실의 친척과 신하들도 따라서 감선을 했다. 대왕대비가 왕의 감선을 따라 할 때는 불효가 된다고 여겨 왕이 직접 감선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왕의 감선 기간에 도성 안에서나 바깥에서 풍악을 울리고 노는 사람에게는 상하를 따지지 않고 벌을 내렸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감선과 더불어 정전(正殿)에서 잠을 자지 않는 피전(避殿), 음악을 울리지 않는 철악(撤樂) 등의 행위도 행해졌다.


왕이 너무 엄격하게 감선을 하면 신하들은 왕의 건강을 걱정하여 감선 기간을 줄일 것을 상소했다. 만약 가뭄 중에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왕에게 감선을 멈출 것을 청하였다. 대부분의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감선을 이어 갔다. 심지어 가뭄이나 홍수로 감선을 할 때는 물품을 진상하는 일도 멈추도록 명령을 내렸다. 감선의 이유가 해결되면 왕은 교지를 내려서 보통 때의 식사로 되돌리는 복선(復膳)을 명령하고 감선을 멈추었다.


자연재해의 발생 외에도 왕은 여러 이유로 감선을 하였다. 그중 하나는 조상의 기일에 몸을 삼간다는 뜻으로 감선을 행한 것이다. 태조는 부친의 기일을 맞이하여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중들에게 궐내에서 불경을 읽게 하였다(『태조실록』 2년 4월 30일). 왕실 친척의 기일에 감선을 한 사례는 자연재해 다음으로 많다. 심지어 자연재해로 선왕의 능이 무너지거나 화재가 일어나면 왕은 불효로 여겨서 감선을 하였다.
왕의 친척이나 왕이 아끼는 신하와 그의 친척이 죽었을 때도 감선을 행했다. 태종은 태상왕으로 있으면서 윤곤(尹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대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감선하는 것은 비록 옛날의 제도에는 없지만 신하가 왕을 위하여 3년상을 행하니 임금이 신하를 위하여 3일 동안 육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라고 하였다(『세종실록』 4년 3월 11일). 그러자 신하들이 태종의 건강을 염려하여 육고기 음식을 들도록 청하니 태종은 마지못하여 따랐다고 한다. 이후 아끼는 신하가 죽을 경우에 왕이 3일 동안 감선하는 전례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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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조봉건 통치배들 '



[ ..... 한글창제를 "리조봉건 통치배들이 인민들을 봉건통치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배우기 쉬운 문자를 만든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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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양, 즉 사상 우선의 원칙은 북한의 모든 교과과목에서 최상위의 절대적 지침이다.

이러한 원칙은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에 걸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사상교양과 분리된 교육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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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과 귀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설사 언급하더라도 고등중학교 3학년 교과서의 <정중부의 난> 설명에서 보여지듯이 "무신 량반놈들이 왕을 쫓아내고 문신 관료놈들을 모조리 쳐죽인 다음 정권을 틀어쥔 사건"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우리가 한글창제를 세종대왕의 업적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데 반해 북한의 고등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는 한글창제를 "리조봉건 통치배들이 인민들을 봉건통치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배우기 쉬운 문자를 만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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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k.  joins.com/dic/view.asp?idx=2000122416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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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 ..... 보통 나물 두가지에 국 한가지로 식사를 했다 .......

......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 ]





[ .....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

.....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 ]



[ .....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 ....... ]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 했지요




1947년 이화장 뒷집에 살았던 인연으로 李承晩 대통령 일가와 14년간 생활했던 方在玉(71)씨를 만났다. 이화장을 시찰하러 왔던 李起鵬씨가 그녀에게 청소를 부탁했고 그 일을 계기로 이화장에서 경무대, 다시 이화장까지 대통령 내외와 가장 가까이서 지내게 되었다. 경무대 禹石根(우석근) 경사와 결혼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을 매우 자상한 분, 프란체스카 여사는 매우 알뜰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方在玉씨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 대통령은 方씨의 아버지를 경무대로 불러서 수술을 시켜도 좋은지 물은 다음 수술하게 했다. 처녀의 몸에 칼을 대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탈한 성격의 李承晩 대통령은 보통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손님을 초대했 을 때 외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 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 았어요』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에 있을 때도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핀으로 머리를 감았다가 드라이로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옷도 산 적이 없다 고 한다. 천을 구입해 와서 비서인 김신영씨와 함께 블라우스를 만들어서 입었다. 경무대에서도 옷을 꿰매 입는 건 여전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이 方在玉씨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께서 내복을 들고 저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하시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도 알뜰하신 영부인이었죠.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무섭게 절약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영구 귀국하실 때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14년간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대통령의 수발을 들었던 方在玉씨는 두 사람이 부부싸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급한 성격이어서 화를 내면 할머니(方씨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할머니라고 지칭했다)가 일단 피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되지 않아요.


할머니가 李대통령의 음식을 일일이 만들어 드리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일일이 확인해 봤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지시를 하면 우리들이 알아서 척척 했지요. 우리들에게 많이 맡겼어요. 소탈한 성격이어서 아랫사람들 하는 일에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언제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늘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셨지요. 한국말을 배워서 우리들에게 간단한 명령어와 단어를 사용해 말씀하셨어요.

두 분은 아랫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내셨어요. 그야말로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셨어요. 제가 허리가 아파 고생할 때 할머니께서 허리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손으로 맛사지해 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명절 때 선물이 들어오면 모아두었다가 일하는 사람들 생일이 되면 나눠주셨어요』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나이가 많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고 말하는 것은 와전된 얘기라고 전한다. 아침마다 자신이 직접 일간신문과 경제신문을 갖다 드렸고 신문을 꼭 읽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李起鵬씨의 아내 박마리아와 유일하게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잘못된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열 국방장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윤치영 내무장관의 부인들과도 친밀하게 지냈으며 정운수 의원 부인 편정희 여사, YWCA 총무였던 박에스더, 이화여대의 金活蘭 박사, 김신실·김영의 교수,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씨 등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경무대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씨는 李承晩 대통령 영결식 때 흰족도리를 썼을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하야하던 날 경무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울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고 일러주었다. 이화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름이 없어서 총무처에 기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온실의 화초를 팔아서 쌀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들에게 월급을 못 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두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들 이화장까지 따라왔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두 분에게서 무엇 하나 어긋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검소하고 소박하고 너무도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지요』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로 떠나자마자 경찰서에서 나와 물건에 딱지를 붙이고 물건을 실어 내갔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짐을 실어 내가고 폐가처럼 되어버린 이화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경무대 식구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方在玉씨를 비롯해 경무대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프란체스카 여사 영결식 때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무대 식구들은 아들 李仁秀씨 가족들과 내왕을 하고 있다.



『전 정치적인 건 잘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기운 옷을 입고 아끼느라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모습은 모든 국민이 본받아야 돼요. 그때 경무대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 그랬어요.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요. 높은 자리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方씨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록새록 李대통령 내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 ..... 이화장은 물론 경무대도 지붕 새는 것을 수리하는 일 외에는 손을 못 대게 했다...... ]


“나라 살림 검소하게 하라”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2016.02.05


[새연재] 인간 이승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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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나라 일을 맡은 사람이 자기 집을 고치면 그런 데서 부정부패가 싹트게 된다고 하여 이화장은 물론 경무대도 지붕 새는 것을 수리하는 일 외에는 손을 못 대게 했다. 이승만은 일본식인 경무대의 방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경비 절약을 위해 일제 시대에 만든 다다미방조차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이승만은 자신만 검소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나라살림도 검소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백두진이 재무부 장관 시절 정부 예산안을 편성할 때 국회 심의보다 이 대통령의 결재를 받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고 한다. 백두진의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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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74







[ ..... ''식사 기도를 하실 때는 우리나라에 밥 굶는 국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어요.'' ...... ]



이승만 전 대통령도 기운 속옷 입었어요


CBS TV 황민규 수습PD
2009-01-12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가 말하는

''이화장式 절약법''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이자 이화장의 안주인인 조혜자 여사(67)가 CBS TV 새롭게하소서(1월14일 방송분)에서 자신의 솔직한 가족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화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살았던 사저(私邸). 196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와 결혼한 조혜자 여사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22년간 프란체스카 여사를 시어머니로 모시며, 오늘날까지 이화장의 안주인으로 살아왔다. 늘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모시고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비도 있었지만, 묵묵히 대통령의 며느리로 충실히 살아 온 그녀. 그녀는 시어머니의 검소함을 배워 후원이 뜸한 요즘도 여전히 이화장에서 옛 정취와 역사의 숨결을 보존하며 검소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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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자


▣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깐깐한 시어머니


밥알 한 톨, 두부 한 조각, 콩나물 한 가닥도 함부로 못 버리게 하셨어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소 성품이 검소하고 수수한 여인이었다. 아들 이인수 박사가 출장을 갔다가 사다준 양산을 30년 가까이 사용했고, 40년간 아껴서 입은 검정예복을 며느리 조 여사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정도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속옷이 닳아 구멍이 나도 실로 꿰매 다시 내 놓기도 했단다. ''''시아버님이 시어머님 앞에서는 고맙다 하셨지만 뒤로는 ''''에휴... 이것도 한두 번이지''''하고 푸념을 하곤 하셨어요.'''' 조혜자 여사는 1976년 한 회사에서 에어컨을 기증했을 때도 전력난이 이렇게 심한데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겠냐며 돌려보낼 정도 였어요''''라고 하며 시어머니 지독한 절약 습관을 회상했다.



▣ 서민들의 생활수준에 맞춘 절약 습관



''식사 기도를 하실 때는 우리나라에 밥 굶는 국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어요.'' 조혜자 여사가 밝히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늘 국민을 위해고 기도하는 시부모님이셨다. 아침마다 기독교 방송을 시청하시고 나면, 손을 잡고 남북통일과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기도했던 프란체스카 여사. ''''어머니는 아이들 목욕도 마음껏 씻지 못하게 하셨어요.''''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달동네 아이들은 식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생하는데 우리도 아끼자''''라고 하면서, 이화장의 모든 생활수준을 서민들에 맞추어 생활하게 했다고 말했다.



▣ 시루떡을 좋아하던 진정한 한국인, 프란체스카 여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뽑자면 호두과자, 시루떡이에요. 오스트리아 인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진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모습이었다. 남편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하늘 같이 받들고 순종했으며, 며느리 앞에 있던 고기반찬을 슬쩍 아들 쪽으로 밀어 놓는 극진한 한국인의 모성도 가지고 있었다. 쪽진 머리와 한복을 입고 이화장의 손님들을 맞이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제2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도 강했다. 임종을 앞두고 성경책과 태극기를 함께 넣어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대한민국에 대한 짙은 애국심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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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hristian.nocutnews.co.kr/news/53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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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자기 친족과 재산을 챙기기 마련이지만 이 대통령은 하야 이후 사람 키 만한 박스에 막대기를 꽂아 옷장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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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칼럼] 修己治人


200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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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이화장’이 있다. 그러잖아도 자료를 찾으러 언제 한 번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터여서 20여분 빗길을 걸었다. 찾던 자료는 못 찾았지만 그냥 나오기가 뭣해서 이방 저방 기웃거리는데,아! 눈에 익었으면서도(신문 TV 등을 통해) 새삼스런 광경이 충격을 안긴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속옷들이다.


옛날 신라 적 백결 선생은 깁고 기운 옷을 입어서 그렇게 불렸다더니 이분의 속옷도 기운 위에 덧 기운 자리가 역력하다. 스무 자루는 좋이 넘을 듯한 몽당연필들, 하와이 시절 장롱으로 사용했다는 포장용 종이상자가 또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치밀을 극한 해부과학, 철저히 물질화로 환원된 인체가 주는 충격으로 한껏 처졌던 마음이 이분들의 흔적과 거기에 밴 고결한 영혼으로 해서 크게 위안받는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측면에서 비판을 주저치 않았던 입장이 한참이나 곤혹스러워진다.


수기치인(修己治人).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야 남을 다스린다’고 했다. 이는 유학이 가르치는 정치의 요체다. 우리에게 이를 솔선수범해 보인 이가 이국 태생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다.


그 놀라운 검소 절약의 생활은 이웃,국민 나아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것임에 틀림없다. 정치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어떤 거창한 구호와 청사진도 국민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을 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정치기술에 불과하거나 그것도 못되면 거짓 구호에 그치고 만다.


사랑에 덧붙여져야 할 것은 진지함과 겸허함이다. 자신의 책무에 대해,또 이웃과 국민에 대해 경박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할 때 이 전 대통령 부부와 같은 생활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일이 못된다. 가식으로 시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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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138981?sid=110











박정희




[ .....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

.....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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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군은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뒤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 분은 특히 먹는 데 그러하였습니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그의 친구인 한양대 교수 김병희씨가 박의장 방에 들렀다가 놀란 이야기를 쓴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병희씨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였다. 특히 그가 앉은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였다.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데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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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page=0&C_IDX=11579&C_CC=AZ

명동에서 철조망 치고 농사짓는 사나이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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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1960, 70년대 학교에서 매주 한번씩 실시했던 ‘분식의 날’을 언급하며 “보통 보리밥이나 콩밥을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박 전 대표는 메추리알 크기의 감자만 도시락에 가득 담아왔다. 몸소 실천하는 자세와 국민과 함께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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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  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01100

"박근혜는 학생때도 원칙주의자"
[중앙일보] 입력 2009.05.09









[ .....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

.....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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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접해본 이들은 그가 특히 먹거리에 있어서 검소했다고 증언한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인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경제 관련 부처 장관과 재벌총수 그리고 여야 대표 등이 참가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박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뒤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비록 말년에는 요정을 자주 찾았지만, 그의 검소한 식생활은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는 게 추종자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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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은 아침밥엔 보리를 30% 섞었고 점심엔 칼국수를 드셨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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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검소하고 청렴했다고 하지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기억납니까.


“그때는 쌀을 아끼느라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지 않았습니까. 박 대통령은 아침밥엔 보리를 30% 섞었고 점심엔 칼국수를 드셨습니다. 저와 부속실장 등 본관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점심때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집무실 책상에서 점심을 때웠지요. 오후 서너 시쯤 되면 배가 고파 참느라고 혼났어요. 비서들은 누룽지라도 찾으러 식당을 기웃거렸지요.”




-칼국수를 드실 때 공깃밥이라도 한 그릇 같이 드시지 그랬습니까.


“아니 쌀을 아끼려고 국수를 먹는데 어떻게 밥을 먹나요. 그리고 대통령께서 그렇게 하시질 않는데 제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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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  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40796

“5·16은 근대화 혁명이라고 국내학자들도 이젠 인정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09.10.24









[ .....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


......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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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짐 없었던 보리 잡곡밥



박 대통령은 물욕이 없었고 하물며 재산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는 분으로, 이 사실은 서거 후 모든 국민이 실감하고 있는 바와 같다. 나는 그 많은 현장 확인과 현장 지도의 길에 항상 박 대통령을 자동타 또는 헬리콥터 편으로 수행하였다. 아마 나만큼 민간인으로서 헬리콥터를 많이 탄 사람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 기상에서 여기저기 우뚝 솟을 아파트 단지, 아름다운 농촌 주택, 크고 작은 공장들과 대규모 다목적 댐과 방조제, 그리고 간척지 등을 내려다보며 마치 대통령 자신의 아파트나 집과 공장들이 늘어나고 대통령 소유 농장의 구조물이 이것저것 늘어나는 듯 기뻐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 개인의 재산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라의 경제와 살림살이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또 기뻐했다.




나는 박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파리채를 기억한다.

박 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2층 서쪽 구석에 있는 내방은 오후 내내 뜨거운 햇볕으로 달구어졌다. 땀이 많이 흘렀지만 대통령이 틀지 않는데 내가 선풍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지금처럼 건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 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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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  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454707&ctg=10

<김정렴정치회고록>16. 박정희 대통령의 근검절약
[중앙일보] 입력 1997.05.15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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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1년 다수확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하고 영농기술이 향상되면서 1977년 쌀 자급 시대가 열렸다. 정부는 분식의 날도 없애고 쌀 막걸리 제조도 14년 만에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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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0.



박정희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 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 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한국의 좌파가 원수처럼 욕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는 죽을 때 "평범한 세이코,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그가 죽을 때 입고 있던 바지는 허리 부분을 수선하여 늘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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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 ....... ]


“수십 년 지나도 8·15 돌아오면 수술받던 육 여사 생각나”



중앙선데이

2011.08.13



한나라당 비례대표 이애주(65·사진) 의원은 간호사 출신이다. 그의 간호 경험은 남다르다. 1969년부터 35년간 서울대 병원 간호사로 일했는데 대부분의 기간 동안 VIP 병실 책임자였다. 젊은 시절 그는 파독(派獨) 간호사를 꿈꾸던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징그러운 가난을 떨쳐 버리기 위해 돈 많이 벌 수 있는 풍요의 나라를 떠올렸다. 하지만 꿈과 달리 특별한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74년 초 VIP 병실인 특실(301호) 담당 수간호사가 된 뒤 그는 이승만·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을 서울대 병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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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에게 오랜 병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다. 37년 전인 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의 서거를 꼽았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 저격범 문세광의 네 번째 총탄이 육영수 여사의 머리를 관통했다.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라며 육 여사의 베치코트 얘기를 먼저 꺼냈다. 한복 치마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종의 속치마가 베치코트다. 통상 한복을 맞출 때 한꺼번에 만든다. 하지만 육 여사는 단을 덧대 3단으로 재활용한 베치코트를 최후의 순간에 입고 있었다. 듬성듬성 꿰맨 손바느질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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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여사는 그날 오전 10시23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저격범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았다. 원남동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게 9분 만인 10시32분. 응급 조치와 뇌 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깎는 데 20여 분이 걸렸다. 광복절 휴일이었지만 집에서 TV를 지켜 보던 의료진이 속속 병원으로 뛰어나왔다. 11시쯤 신경외과 과장 심보성 교수가 메스를 들어 시작된 수술이 오후 4시20분까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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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평소 301호실을 이용했나.


“입원한 적은 없지만 79년 10월 초 입원 계획이 있었다. 안과 수술이 예정돼 내가 동대문시장으로 침대시트·치약·칫솔 등 병실 비품을 사러 다녔다. 국산품이 아니면 대통령께 야단맞기 때문이었다. 1m65㎝ 체구에 맞춰 국산 가운과 슬리퍼를 장만했다. 하지만 부마 사태 등으로 입원이 연기되더니 10월 15일 입원한다고 다시 통보가 오고, 이어 10·26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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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인가.


“특실에 오는 분은 예외 없이 예외를 원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병원 규칙을 가장 지키지 않는 분들이다. 아프지도 않은데 입원해 하루 종일 사람 만나고 물건이라면 모두 외제품이고….

나는 박정희 대통령 때 야당 의원은 민주주의 화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 생활하면서 환상이 많이 깨졌다. VIP가 입원하면 통상 우리 직원들이 알아서 예외를 감수한다. 그래도 힘든 일은 넘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애기 울음 소리 녹음하려고 병실에 녹음기를 켜 놨는데 간호사가 몰랐던 모양이다. 간호사가 ‘아기만 국산이네’라고 중얼거린 말이 녹음돼 난리가 벌어졌다. 어떤 장관님은 병원에 에어컨 고장 났다고 병원비를 깎으라고 호통치고…. 박정희 대통령 때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 중 쓰러져 5년 반이나 입원한 VIP가 있었다. 우리는 의식불명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TV에서 박 대통령 뉴스가 나오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라.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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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5969972










2004.5.29.



노무현 대통령 초청 열린우리당 의원 및 중앙위원 만찬



[ ..... 포도주에 샥스핀 수프, 기름진 음식, 달짝지근한 술, 노래 그리고 춤 …... ]



″하필이면 이때 자축연 청와대가 노래방인가″…


‘당선자 만찬’ 비난여론



2004.05.31.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초청 열린우리당 의원 및 중앙위원 만찬에서 노 대통령과 의원들이 총선 승리를 자축하며 노래까지 부른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청와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였기 때
2023-01-21 12: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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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위천 (223.xxx.xxx.195) 2023-01-21 12:31:58


2004.5.29.



노무현 대통령 초청 열린우리당 의원 및 중앙위원 만찬



[ ..... 포도주에 샥스핀 수프, 기름진 음식, 달짝지근한 술, 노래 그리고 춤 …... ]



″하필이면 이때 자축연 청와대가 노래방인가″…


‘당선자 만찬’ 비난여론



2004.05.31.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초청 열린우리당 의원 및 중앙위원 만찬에서 노 대통령과 의원들이 총선 승리를 자축하며 노래까지 부른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청와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사회를 본 김부겸 의원이 즉석에서 몇몇 사람에게 노래를 시킨 것뿐인데 마치 호화판 연회라도 벌인 것처럼 잘못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 해명이다.



‘선각자’라는 네티즌은 31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청와대가 일 개인의 사저가 아닌 국가 관저인데, 우리당이 노래방으로 만들었다니 참 한심하다”면서 “자축은 경제를 살려 국민의 칭송이 자자할 때 해도 늦지 않다”고 꼬집었다. ‘겁데기’라는 네티즌도 “30만명의 아동과 그보다 더 많은 노인들이 끼니를 거른다고 한다”면서 “이런 때 청와대에서 꼭 만찬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알갱이’라는 네티즌은 “국민들이 국민연금 촛불시위를 벌일 때 청와대에서 술 퍼마시고 노래까지 하면서 질펀하게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면서 “그 자리에서 국민사기보험(국민연금)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있었나”라고 흥분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을 내 “포도주에 샥스핀 수프, 기름진 음식, 달짝지근한 술, 노래 그리고 춤…. 먹고 마시고 춤춘 청와대 만찬장의 모습을 국민들은 한숨과 절망으로 지켜봤다”고 꼬집었다. 이어 “경제 위기가 아니라 경제 참상의 시대인데, 입으로는 국민이 두렵다면서 국민의 고통과 절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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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63509






[ ...... 청와대에서 중국식으로 만찬을 ......

..... 메뉴로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수프) 등 7가지가 나오고 포도주가 곁들여 ...... ]



“샥스핀에 노래… 권력에 취했나”


2004.05.31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9일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중앙위원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중국식으로 만찬을 하며 ‘부산갈매기’ 등의 노래를 부른 것을 두고 한나라당이 31일 공세에 나섰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경남지사 보궐선거 지원유세에서 “대통령이 2시간30분 동안 얘기했지만 경제살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4백만 신용불량자의 고통과 거리를 헤매는 50만 청년 실업자의 눈물, 30만 결식아동의 굶주림을 생각했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가 나왔어야 했다”는 지적이었다. 한마디로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전여옥 대변인은 좀더 직설적이었다. 전대변인은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라는 논평을 통해 “메뉴로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수프) 등 7가지가 나오고 포도주가 곁들여졌는데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권력에 취하고 승리에 오만한 모습을 국민은 한숨과 절망으로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뭘 그리 잘하고 자랑스러워 이처럼 요란한 잔칫상을 벌이고 춤과 노래로 들썩거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 당직자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남원 사또인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읊었던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높구나)’라는 시가 생각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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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0405311858501









2003 권노갑에 대한 증언



[ ...... 상어 지느러미찜과 그 달의 이벤트 음식을 시키고 고급 포도주 딸보를 주문하곤 했다 ........ ]



100만원 넘는 호화식사… 권노갑씨 週 3~4회 즐겨


2003.10.28.



현대 비자금 2백억원 수수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기업인등을 만나면서 삭스핀 찜등 한번에 1백만원이 넘는 호화판 식사를 주 3,4회씩 즐겼다는 법정증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28일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온 신라호텔 직원 유모씨(여)는 권 전 고문이 일주일에 서너번 찾아와 상어 지느러미찜과 고급 포도주 등을 즐겨 먹었다며 식사비는 1인당 30만원선으로 4명이 식사하면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해 1백40만원 정도 나왔다고 진술했다.


유씨는 권씨는 평소 1인분 7만~8만원 상당의 상어 지느러미찜과 그 달의 이벤트 음식을 시키고 고급 포도주 딸보를 주문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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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증인 신문에 앞서 변호인측이 현금 상자 19박스를 싣고 운전자가 탑승하면 6백 에 달한다며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운반했다는 승용차에 현금 박스를 직접 싣고 차가 잘 굴러가는지 검증해 보자며 재판부에 이례적인 현장검증 요청을 했고,재판부가 이를 허락해 눈길을 끌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655813







[ ..... 식사 한번에 5천만원을 쓴 적이 있다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있고, 호텔에서 1인당 20만~30만원짜리 식사를 즐겼다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 ]



[여적] 정치인의 밥값


2003.10.29.



점심 때면 서울 종묘공원 돌담길을 따라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선단체의 공짜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나 노숙자들이다. 불황기를 맞은 요즘에는 그 줄이 더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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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생은 경이로운 것이다. 유복한 인생 또한 얼마나 넘쳐나는가. 가령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새끼 비둘기로 되어 있는 한끼를 먹고 5천5백만원을 밥값으로 낸 사람이 있다. 올해 초 중국 시안(西岸)의 한 식당이 이런 황제요리 메뉴를 내놓았는데 실제 그런 식사를 하고 식대를 낸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한끼에 얼마를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사 한번에 5천만원을 쓴 적이 있다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있고, 호텔에서 1인당 20만~30만원짜리 식사를 즐겼다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있다. 특히 권고문에게 그런 식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의탁 노인이 수시로 공짜밥을 얻어먹듯이 1주일에 3~4차례 그런 식사를 했다니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오랜 세월 풍찬노숙하며 민주화 투쟁, 야당을 하고도 한 자리 못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권력을 잡았고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었다. 그것으로 보상은 끝났다. 그들은 이제 다른 것, 국민들이 새로이 요구하는 것을 듣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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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흥청망청일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도 배웠는지 벌써 돈잔치 추문이 역겹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가야 한다. 보상을 해 주느라 멈출 새가 없다. 그런데 신당한다는 사람이 미군 카지노에서 노름이나 하고 뒷걸음질이다. ‘밥값하는 정치’를 바라기는 턱없다. “오늘 밥값으로 얼마나 썼지”. 이런 생각이나 한번 한다면 다행이겠다.


이대근 논설위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0038316?sid=110










'새것 비치했습니다'… 비서가 李 욕실에 에르메스 로션까지


2022-02-04 이주희 인턴기자



“로션 교체해놓고 남은 건 합체시켜.”

“새 것은 지사님 욕실에 배치했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뒀습니다.”


공개된 내용 중 온라인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심부름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es) 로션을 이 후보의 욕실에 비치하는 일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배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A씨에게 ‘○○○에게 로션 받아서 교체해 놓고 남은 거 두 개 합체 시켜’라고 지시했다. 이에 A씨는 ‘○비서에게 받아서 새것은 지사님 욕실에 비치하였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두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대화와 함께 해당 제품의 사진이 등장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 지사가 사용한 제품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으로 남성들이 면도 후 피부 진정을 위해 바르는 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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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담은 국내외 온 ·오프라인서 판매되는 애프터 셰이빙 제품 중 가장 비싼 군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에르메스, 100ml)의 공식 홈페이지 판매 가격은 98,000원이다. 디올 맨즈(100ml)와 샤넬 맨즈(90ml) 제품은 7만원대이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620EB3AJO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 ....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

.....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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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직원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朴正熙 대 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1969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간이 이발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5평 규모의 전용 이발관이 마련된 직후 하루는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시기 위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부속실에서 왔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朴대통령께서는 이발을 하시기 위해 이발관으로 들어오셔서는 저를 보고 「朴군, 이제 이발 시설도 갖추고 했으니 왔다갔다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떤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제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대통령께서 재차 「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싫은가」고 하시더군요. 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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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는 그날로 이발관 문을 닫아 버렸다고 한다. 朴씨는 이날부터 19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이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他界하는 날까지 항상 朴대통령 곁에서 생활했었다.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 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 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 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하셨습 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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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이 이발을 할 때 陸英修 여사도 자주 이발관에 오시곤했다는 얘 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陸여사께서 자주 이발관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朴대통령 머리 만져드릴 수건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적셔 저에게 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름에도 절전운동 때문에 이발관에 에어컨을 잘 가동하지 않았는데, 陸여사께서 선풍기를 들고 오셔서 朴대통령에게 틀어 주신 적도 많았습니다』


『朴대통령은 곱슬머리』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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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얘기를 하던 도중 한가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개해주었다. 신축한 비서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66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전용 이발 공간이 갖추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샤워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더운물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이날도 陸여사가 더운물과 찬물을 양동이에 받아와 세면대에 담아 놓았는데 머리를 감던 중 朴대통령이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타일이 부착돼 있지 않은데다 세면대도 낮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는 것.


朴씨는 당시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낡은 시설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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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께서 이발관을 찾으실 때 정장 차림으로 옵니까

『아닙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러닝 셔츠 차림에다 허리띠를 맨 바지의 윗부분을 한 번 아래로 접고 오십니다. 바지의 허리 부분이 헐렁할 때 허리띠를 맨 부분을 한 번 접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습니까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대통령이 구멍 난 러닝 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는 갑작스럽게 朴씨로부터 逆질문을 받는 바람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넘겼다)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어르신, 이제 허리띠를 좀 바꾸시지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이 사람아, 이것도 아주 편 해. 몇 년은 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朴正熙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상관이었습니까


『朴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하도록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朴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래이」 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한 번은 연락을 받은 뒤 40여 분 만에 이발을 했는데, 이때에도 朴대통령께서 중간에 이발관으로 오셔서 「미안해서 우짜노. 朴군, 일 마치고 바로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하시더군요. 도리어 제가 미안해 「어르신 저는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각하시지 말고 충분히 집무 보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래 고맙대이」라며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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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reporter/writerboardread.asp?idx=28&cPage=16&wid=soonj
청와대 이발사가 본 「인간 박정희」; 『어르신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송승호
200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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